교구전도간증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오병이어교회입니다.

6교구 헌신예배 전도 간증 *소하 6교구 김희형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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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오이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087회 작성일 14-09-0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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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예배 전도 간증 

 

                              *소하 6교구 김희형 집사*

 

 

할렐루야!

 

저는 소하 6교구 박선하조 김희형 목장의 ‘새싹 목자’ 김희형입니다.

 

이제 신앙생활을 시작한 저에게 간증을 하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봤지만 잘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옳으신 하나님을 믿고 오병이어교회를 통해서 제가 만난 하나님을 소개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교회에 오기까지>

 

저는 60~70년대에 지방도시에서 7남매를 유치원을 보내고, 딸들은 피아노를 가르치고 고기나 과일을 떨어지지 

 

않고 온 식구들이 먹을 정도로 비교적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중3때 당시 39세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생계나 학비를 걱정하는 것은 엄마의 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책임감이 강하고 부지런한

 

분이었습니다. 답답한 일이 있을 때면 점을 치거나 굿을 하여 위안을 얻으면서 7남매를 키우셨고 7남매는 무탈하게

 

성장해 가정을 꾸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결혼하여 20년 가까이,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말 그대로 “그냥엄마, 대강아내”로 살면서 외줄타기같은 생활을 하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주고, 남편이 무던했기에 건너올 수 있었던 세월이었습니다. 

 

 

결혼 후 5년쯤 되었을 때 남편은 빚을 동원해 사업을 시작하였고, 결국은 빚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졌습니다. 

 

대부분의 융자에 보증인이었던 내게 급여압류가 들어왔고, 이는 관리자급인 내가 누군가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기분으로 살아야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그 수모를 피하고 싶었지만 눈앞의 생계도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습니다. 

 

 

빚더미와 함께 사업을 정리한 남편은 건강상태도 엉망이었고 무기력하게 방 하나 차지하고 술을 마셔야 

 

잠을 들 수 있는 “홧병 환자”였습니다. 눈에 안보일 때는 그런 남편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지만 집안에서 

 

마주하면 울컥하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당장 굶거나 길거리에 나앉은 것은 아니지만 계획을 세울 수 없는 

 

하루하루가 너무 길고 힘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른들로부터 걱정이나 책망을 들을 일이 별로 없었던 저는 양가 어른들에게 걱정끼치는 상황 

 

그 자체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무 일 없습니다. 잘 지냅니다....”이렇게 거짓말하는 게 싫어 안부전화도 

 

하지 않게 되었고, 어른들은 걱정하는 마음이셨다가 나중엔 서운해 하셨지만 하는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직장 선배님께서 따로 불러 이런 상황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하는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망치로 맞은 느낌이었고, 처음으로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빚에서 벗어나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저는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였습니다. 현직신분으로 파산신청을 하여 직장에 

 

누를 끼칠 수는 없었습니다. 

 

 

파산과 면책결정이 진행되는 2년 정도는 퇴직금과 강의료, 주변의 도움으로 버티었고, 돈이 떨어질 즈음 일자리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나이 50이 되어 한참 자라나는 아이가 셋이 있는데 신용카드 한 장 만들지 못하고, 

 

집을 얻자고 해도 보증금 2~3천만원도 수중에 없었고, 시장한번 맘놓고 볼 수 없는 살림살이였습니다.

 

이런 시간들이 너무 길어지자 무기력해졌고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때부터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대학때는 불교학생회활동을 열심히 한 친구였는데, 

 

몇 년 전부터 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무심코 지나친 친구의 변화였지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

 

교회다니니 어떠냐”고 물었고 그 친구는 “알아서 찾아오너라 하는 부처님보다는 내가 진리니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이 분명해서 좋다” 이런 답변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생각했습니다. 나는 삶을 바꾸고 싶어한다. 나름의 성실함과 최선으로는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해보지 않은 일을 해야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그런 생각 끝에 “왜 나는 교회 갈 생각은 한 번도 안했을까? 

 

수 십 년을 새벽기도 다니시는 시어머님을 곁에 두고서도...” 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무조건 믿겠습니다. 5년은 너무 길고요, 구하면 주시는 하나님이라 하셨으니 3년 안에 조그만 

 

신호라도 주세요. 그 이후에는 제가 죽든지 살든지 내 맘대로 하는 것으로 벌주기 없기입니다”라고 하나님과 

 

말도 안되는 흥정을 하고 교회를 나가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50년 넘게 제 생각만으로 살아온 저에게 먼저 손 내밀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양육받던 

 

초기에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 친히 부르신 것”이라고 하실 때 “설마 그럴 리가요... 교회 다닌 적도 없는

 

나를 하나님이 어찌 아시고... 말도 안됩니다” 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입술로 지은 죄를 

 

용서해주세요.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목이 곧은 백성이 다름 아닌 저였군요, 많이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건 여담이지만 막상 교회를 가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막막했습니다. 

 

“종교부지”란 팻말이 있을 때 근처를 한 두번 지나간 적이 있었고, 어느새 교회가 다 지어졌지만 

 

“오병이어교회”라는 이름은 왠지 이 세상의 필요나 기적만을 강하게 구하는 교회는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기에 망설여졌습니다. 

 

 

갑자기 여수에서 목회를 하고 계시는 고모부가 생각나서 상의드렸더니 너무 기뻐하시면서 당신도 십자가의 길 

 

양육시스템을 오래전에 배우셨다면서 목사님이 너무 훌륭하신 분이라면서 당장 등록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단이거나 말 많은 큰 교회는 아니라는 최소한의 대답을 듣고 나니, 내가 다니게 될 교회가 궁금해졌습니다. 

 

홈페이지를 살펴보고 담임목사님의 지난 설교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 설교는 듣기만 할 때는 너무 좋았는데 

 

화면과 함께 보면 표정변화가 없이 말씀하셔서 좀 딱딱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무 생각하지마, 그냥 적응해야 돼...

 

”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끝까지 들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잘 지어진 밥과 깔끔한 된장국, 그리고 맛깔스런 김치로 차려진 소박한 밥상을 마주한 

 

느낌이었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다시 생각나는 그런 밥상처럼 하나를 듣고 나면 어느새 다음 주 설교를 열어서 듣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제게 이렇게 훌륭한 본이 되는 담임목사님을 만나서 올바로 

 

하나님을 배우게 하시고 여러 지체들과 함께 좋은 환경에서 신앙생활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셔서 거듭 감사합니다. 

 

 

초기엔 기도를 어찌 해야 할지조차 모르는지라 새벽기도시간에 불이 꺼지고 통성기도가 시작되면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5분을 넘지 않았고, 남은 25분을 암담하게 기다리다가 뭔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또 눈을 감아봤지만 이번엔 3분을 넘지 못했습니다.  

 

30분 이상을 기도하라고 쓰여진 화면을 응시하면서 ‘30분 이상 기도하는게 가능하기는 한 일인가?’ 싶은 마음으로

 

앞뒤좌우에서 끝없이 기도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지켜보았습니다. “나는 왜 저분들처럼 간절하지 못할까? 

 

좀 더 간절해질 때 교회에 왔어야했나?“ 이런 생각도 끝나고, 딱히 더 기도할 제목이 생각나지 않으면 

 

“하나님, 이곳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구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 아실 터이니 부디 이분

 

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세요” 라고 기도하는가 하면 “동시에 수백명이 이렇게 울부짖으면 말한 사람이 

 

누군지 일일이 다 기억하시기도 힘드시겠다..” 이렇게 하나님 걱정까지 해드리면서 시간을 채우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를 사랑하시어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제게 기도시간이 즐거워지는 은혜를 주시기를 구합니다. 

 

말도 안되는 핑계와 게으름으로 기도를 게을리한 죄를 용서하시고 삶의 매순간마다 기도로 준비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허락하여 주십시오. 

 

 

양육시간에 이런 고민을 말씀드렸더니 기도훈련집을 권해주셨고, 기도훈련집에 표시하면서 읽어나갔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대화하는 법을 연습하면서 삶시리즈, 학교시리즈 양육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기도에 

 

서툽니다. 기도훈련집책을 읽으면서 또랑또랑 하는 기도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정말 눈앞의 문제가 크게 

 

느껴지면 기도가 나오기 보다는 눈물만 나옵니다.

 

 

 “내 모든 형편을 다 아시는 주님” “낮은 신음에도 귀 기울이시는 주님”께서 “항상 너를 지키리”라고 약속하시는 

 

찬송가 구절에서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걱정이 사라집니다. 

 

제가 하나님을 만나는 방식입니다. 2살짜리 아이처럼 그렇게 울고 있으면 하나님은 제가 미처 드리지 못한 

 

이야기를 순식간에 다 들으시는 분입니다.

 

 

어느 수요예배때 담임목사님께서 “여러분은 무엇이 가장 두렵습니까?”라고 질문하실 때 다들 조용히 있는데 

 

저도 모르게 “일용할 양식이요”라고 크게 답해놓고 머쓱해졌습니다. 2년이 다 되어가는데, 내 기도제목이 결국 

 

일용할 양식에서 한발자국도 못 나간 것이 민망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아무 말씀 하지 않으셨지만, 그날 돌아오는 길에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습니다. 

 

희형아, 설마 하나님께서 너 하나 굶겨죽이지 않으시려고... 단지 그것 때문에 너를 여기까지 인도하신걸까? 

 

정말 그게 다 일까? 저는 한동안 이 질문을 계속 붙잡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다 하나님은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머리로 알면서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이 거기 있었습니다. 

 

하나님 자녀된 권세를 손에 쥐고도 또다시 염려와 걱정으로 습관처럼 돌아가는 미련한 내가 거기 있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확성기’라는 설교말씀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씀처럼 그날 이후 이제는 눈앞의 문제보다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기다리며 

 

지켜보기도 합니다.  항상은 아니지만요. 

 

 

<전도에 대한 생각의 변화>

 

세례를 받을 즈음 나의 교회생활을 점검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는 참으로 게을렀구나 하는 회개를 

 

하였고 전도에 대한 사모함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오래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당연히 하는 것으로 여겼던 전도에 대한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내가 속한 6교구의 전도특공대 식구들의 헌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구는 어린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들이 정말로 어린 아이들과 함께 전도를 합니다. 함께 모여 전도의 

 

열매를 구하는 기도를 뜨겁게 드리고, 전도용품을 함께 준비하고 노방전도를 나가고 관계맺기를 하여 한 영혼의 

 

정착을 위해 한마음으로 열심입니다. 

 

또한 연배가 높으신 권사님들께서는 건강이 좋지 않으심에도 태신자초청모임을 비롯 크고 작은 행사에 기꺼이 

 

정성이 가득한 음식을 준비하십니다. 몇 년 후 제가 갖고 싶은 헌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제게도 동일한 은혜가 

 

함께 하여 전도의 기쁨을 알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길 기도합니다. 

 

 

<전도사례>

 

지금부터는 저의 전도사례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가족입니다. 저는 남편과의 사이에 두 딸과 아들하나를 두고 있습니다.

 

종교가 없었던 우리 부부는 5년전 시아버님이 편찮으실 때 진지하게 이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노

 

후의 종교생활은 함께 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갑작스런 변화를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성격인 남편입장에서는 

 

갑자기 교회를 가자고 서두르는 내가 귀찮기도 했겠지만 기왕에 약속한 바가 있어 함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남편에게 교회간다는 것은  주일예배를 참석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어떻게든 새벽기도를 

 

나가고 금요철야에 참석하려는 나를 신통하다는 듯이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12월의 어느 새벽, 새벽기도를 다녀오는 것도 모르고 자고 있는 남편을 보자 어이없는 기분과 함께 울컥 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 이 사람은 왜 기도 시키지 않으셔요? 남편은 기도 안해도 되는 건가요?” 라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할렐루야! 그 해 송구영신 예배때 하나님은 남편의 마음을 만지셨고, 2013년의 시작과 함께 새벽기도를 나가기 

 

시작하고 십자가의 길 양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금요철야기도에 나가고, 집에서 극동방송을 틀어놓고 

 

말씀을 가까이하면서 기도에 열심입니다. 요즘은 새벽기도를 나가지 않는 저를 기도를 게을리하는 

 

죄를 짓는 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의심많고 목이 곧은 남편을 한 순간에 이렇게 

 

변화시킬 수 없음을 저는 압니다. 무한 감사드립니다. 

 

저희 두 딸은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간섭하지 않고 키우는 편이기도 했고, 일요일 아침 

 

늦잠 안자고 교회다니는 것이 신통해서 내버려 두었습니다. 내가 교회를 다녀 보니 아이들은 부모랑 같은 교회를 

 

다니는 것이 기본이라고 여겨서 시간을 갖고 교회를 옮기도록 권면했고, 지금 함께 오병이어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집의 기도제목인 아들은 종교의 자유를 달라고 저항을 했지만 고교졸업과 함께 강권적으로 교회에 

 

등록시켰습니다. 새가족학교도 가정평화를 위해서 어찌어찌 마쳤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습니다. 

 

주일예배를 빼먹거나 늦는 것은 다반사고 예배시간에 조는 날이 대부분이어서 주일오후면 집안이 

 

조용하지 못했습니다. 새로 산 성경책은 지퍼를 열어본 적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늘 독수리눈알처럼 지키시고 돌보시고 계심을 엄마인 저는 분명히 느낍니다. 

 

지난 2년간 여러 가지 경험과 과정을 통해 아이를 성장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조금은 아까워하며 마지 못해 

 

내던 십일조를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가 하면, 십일조의 비밀도 조금씩 깨닫는 눈치입니다. 

 

어느날인가는 지나가는 말로 “하긴, 십일조를 내도, 내가 쓸 돈은 있더라”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위한 계획을 지니고 계심을 믿습니다. 부디 큰 믿음 주시어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두 번째 사례는 멀리 광주에 사는 여동생입니다.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 두 아들을 키우는 동생은 남편의 

 

수입이 들쑥날쑥해서 사실상 생계를 꾸려가면서 마음고생이 많았던지 2013년 1월 갑상선암과 유방암을 동시에 

 

선고받고 수술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몸에 그리 큰 병이 자리를 잡았을까, 

 

어릴 때부터 유난히 겁이 많은 동생이 지금 얼마나 무서울까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나고 언니로서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던 것이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병문안을 가면서 다섯달 동안 예배시간에 메모한 작은 공책 다섯 권과 삶시리즈 책자, 기도훈련집을 건네면서 

 

시편 119편 71절 말씀인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는 말씀을 장님 코끼리 만지듯 전했습니다. 

 

새가족시간에 들은 담임목사님의 간증도 전하고, 짧은 몇 달동안 내가 받은 은혜도 나누면서 천국에 소망을 

 

둘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촉촉한 부슬비가 내리던 어느 밤, 인간의 삶과 기도학교 책 두 권을 7~8시간동안 함께 

 

읽어나가면서 맞이했던 그 아침의 은혜로움을 여러분이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동생은 그렇게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온전히 믿기 시작했고 퇴원후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할렐루야! 지금 동생은 예전 직장에 복직을 하였고 가족과의 관계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저와 동생은 하나님께서 

 

치유해주셨음을 온전히 믿고 있습니다. 

 

같은 날 수술했던 병실동기중 상태가 가장 심각했고 나이도 제일 많았지만, 아프기 전 생활로 온전히 회복된 

 

사람은 자기 혼자뿐이라면서 늘 감사하며 기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토속신앙의 뿌리가 깊은 친정어머니와 절에 다니거나 신앙이 없는 다른 형제들의 영혼구원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카톡이나 밴드를 통해 매일 성경말씀을 나누면서 가족구원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마음의 쓴 뿌리를 뽑아내지 못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구원을 위한 기도를 게을리하는 저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책망하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예전 직장동료를 전도하여 저의 첫 번째 목장원이 된 사례입니다. 

 

삼년전 같은 직장에 근무하다가 다른 곳으로 옮긴 이 친구는 집이 근처라 일년에 한두번 동네에서 식사를 함께 

 

하는 사이였습니다. 전도하겠다는 의식도 없이 교회를 다니고 얻은 마음의 쉼이 너무 좋다고 교회 

 

자랑을 하였습니다. 

 

여느 집처럼 이 집 역시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이를 알고 있는 친정언니는 부적을 건네주며 큰 굿을 하자고 하였고, 

 

시누이는 다니는 교회를 함께 다니자고 하였는데, 그 교회가 이단인 듯하다고 하였습니다. 양쪽에서 동시에 

 

끌어당기지만, 설사 내가 힘든 문제가 있더라도 그 어느 쪽도 가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청년시절 

 

교회를 다녔으나 시누이 때문에 남편은 교회의 ‘교’자도 꺼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간의 짧은 

 

교회생활을 통해 배운 것만으로도 이 친구의 문제는 기도해야 해결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주변의 

 

영적전투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교회를 쉬는 것은 정말 큰 죄이니 이왕 다녀야 

 

할 교회라면 같이 다니자고 했습니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고, 그후에도 한달정도 

 

영적전투기간이 있었으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이 친구의 마음을 붙들어주셨습니다. 어느날 이제는 등록을 하고 

 

제대로 다니겠다고 하였고, 곧바로 삶시리즈 양육을 시작하였습니다.

 

아직 믿지 않는 가족들의 점심준비로 새가족학교는 시작하지 못하고 있지만, 주일성수와 함께 매주 예배 한시간

 

전에 만나 인간의 삶부터 축복의 삶까지 양육을 모두 마쳤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십일조와 헌금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족들의 영혼을 구원하여 주시고 천군천사로 지켜주시어 하나님의 일꾼으로 

 

단단히 서기를 기도합니다.    

 

 

끝으로 저의 비전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지난 5월 목자가 되었습니다. 목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기쁘게 감당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저의 목장이 단단히 서고 금년내에 2배 부흥하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의 길을 잘 배워 집에서 교회에서 

 

그대로 실천하는 목장이 되기를 원합니다. 

 

모든 목장원이 예배, 기도, 헌신, 교제, 헌금, 전도 등 기본적인 교회생활을 몸에 익혀 한사람도 빠짐없이 

 

선한 목자로 바로 서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앞장서기를 원합니다. 

 

 

특별할 것 없는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모든 일에 함께 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 돌려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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