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전도간증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오병이어교회입니다.전도및교구성장 간증문 <교구성장간증_2017년 후반기> 7교구 박영미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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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7교구 박영미 목장의 박영미 목자입니다
먼저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딸은 2청년부에 다니고 있습니다. 딸 아이의 기도가 없었다면 아마 저는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곧고 바르게 자랄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혜로 보살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자식보다 못난 어미였던게 부끄럽습니다.
제가 교회를 다니게 된 이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정말 교회가 싫었습니다. 근처에 가는 것 조차 싫어서 일부러 돌아서 다닌적도 있었습니다.
교회 앞을 지나가면 교회 나오라고 붙잡는게 싫었습니다.
어릴 적에 크리스마스날 교회에 가면 초코파이와 계란을 준다고 친구들은 다 갔었지만 저는 교회에서 주는 초코파이와 계란을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것 또한 불교였던 친정어머니의 영향력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날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였습니다.
이 남자가 너무 좋았지만 저희 집에서는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 당시 저희 친정은 잘 살았습니다. 친정 아버지께서는 시골에 사는 사람이 재산이 있음 얼마나 있냐며 너무 가진게 없다고 시집가면 고생이라고 반대를 하신것입니다. 하지만 전 이 남자가 너무 좋았습니다. 이 남자가 아니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집안에서 반대를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도망가는 방법밖에는 없는거죠, 우여곡절 끝에 전 이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시댁이 기독교 집안이었습니다. 시부모님께서는 교회를 다니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전 그렇게 싫어하던 교회를 다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시부모님과 남편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한가지의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일날은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평일날은 점집을 다녔습니다. 제가 점집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점집에 가면 제 집에 온것처럼 너무 편했습니다. 친구들은 그곳에 있는 불상들이 무섭다고 하더군요, 어느날 보살언니가 하는 말이 “너도 나같은 팔자구나” 하는데 저는 싫다고 했습니다. 그럼 소리나는 장사를 하면서 액땜을 하라고 하더군요.
점집가서 보살언니들하고 수다 떨고, 밥먹고, 노는 것이 좋았습니다. 굿도 하고 부적도 사서 붙이고 산 기도도 같이 간적이 있었습니다. 점집에 갖다 준 돈을 하나님 나라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면 나의 천국은 그야말로 천국이었을 텐데...
굿을 해야하는데 돈이 없어서 일수라는 것 다 써보았습니다. 아마 광명시의 점집은 거의 다 가본 것 같습니다. 길거리를 가다가 새 깃발이 세워져 있으면 무턱대고 들어갑니다. 새 깃발이 세워진 곳은 내림굿을 받은지 얼마 안된 곳이라서 점괘가 잘 나온다고 하더군요. 점괘는 늘 똑같은 이야기인줄 알면서도 교회를 가는 것 보단 점집이 더 좋았습니다. 한쪽발은 무당집에 한쪽발은 교회에...
중원교회가 오병이어교회로 바뀔때까지 19년이란 세월을 저는 세상이 더 좋아 세상이란 단어만 붙잡고 살아왔습니다. 주일만 지켜도 남편이 좋아하고 딸아 좋아했기 때문에 주일만 지켜도 저에게는 큰 믿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9년동안 저는 한 교회만 다녔습니다.
저를 아시는 분이 얼마나 계실까요. 없습니다. 당연히 없습니다. 성도들간의 교제도 없을뿐더러 헌신이라는 단어는 아예 배제하고 살았습니다. 한마디로 제 잘난 맛에 살았습니다.
전도?!저는 이 단어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노방전도를 하는 그들을 보면서 어떻게 미쳐야 전도가 되는거지 속으로 비아냥 거렸습니다. 이런 제 마음을 하나님께서 보셨을 때 얼마나 불쌍히 여기시고 안타까워 하셨을까요. 내 자식이 저리 철없이 생각하면 저 또한 마음이 아픈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제가 이런 생각을했다는 자체가 통곡할 일입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에 나가서 살아보니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사람을 리더하는게 좋아서 누군가가 저에게 수장을 시켜주면 미친 듯이 충성했습니다. 그때 이 마음으로 하나님께 충성했다면 저는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장사만 19년을 했습니다. 그럼 ‘돈좀 벌었겠네’ 생각하시겠지만 하나님을 떠나 하고싶은 것 하면서 살았는데 무슨 돈을 벌었겠습니까. 나를 위해 투자한 것도 없고 사치와 허영을 한 것도 아닌데 부의 축적이란 없었습니다. 아마 돈까지 벌게 되었으면 전 여전히 세상에 미쳐서 저 잘난맛에 여기 이 자리에 서있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19년이란 세월을 철없는 아내고 속없는 엄마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실질적인 피해자는 제 가족의 몫이었습니다. 뭔가를 하고싶으면 앞뒤 구분없이 그냥 일을 만들기가 허다했습니다. 가게가 하고 싶으면 일단 계약을 하고 옵니다. 돈?! 없습니다. 아는 형님한테 빌려달라고 하면 몇천만원을 그냥 빌려주더라구요, 개업도 가족들 몰래 한 적도 많습니다. 결국 들통나면 빌려서 한거라고 하다가 장사가 안되면 손 털고 나오기 일쑤였습니다. 뒷 감당은 모두 남편의 몫, 남편이 다 해결해 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밑바닥까지 안내려가게 해주신것에 감사하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더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회개할 수 있었던 계기, 하나님께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으면 제일 먼저 누구를 치시는지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맞습니다. 제 남편입니다.
2015년 1월 14일 새벽 한 시.
남편은 항상 퇴근 후 가게에 와서 청소해주고 저와 같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날도 남편이 일을 마치고 가게 청소를 해주러 왔습니다. 그런데 체한 것 같은데 자꾸 헛구역질만 나오고 식은땀이 난다고 하길래 급체를 한 줄 알고 택시를 타고 성애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길을 열어주신 것 같습니다. 성애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인턴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왔냐고 묻길래 증세를 이야기 했더니 체한게 아니고 혈관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부천 세종병원에 가는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조금만 늦었다면 모든 혈관이 다 막혔을거라고 말했습니다. 부천 세종병원에 가니 혈관이 돌아오게끔 응급처치를 해주시고 다음날 모든 검사를 마쳤습니다. 그리고는 혈관 이식 수술을 해야한다는 판정이 나왔습니다.
1월 16일 수술실에 들어가는 남편을 보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저는 처음으로 간곡히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붙잡고 매달렸습니다. 살려만 주시면 순종하고 복종한다고 했습니다. 수술 예정시간이 5시간이라고 했는데 7시간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한참 후에 집도한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수술은 잘 되었는데 아직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나질 않고 있다고 걱정은 말라고 했습니다. 순간 아멘! 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나를 시험하사 엄청 속을 태우셨습니다. 한참 후에 회복실에서 남편을 보는데 내가 이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한건가 참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오죽 속이 답답했으면 이렇게 가슴을 풀어헤쳐 보여줬을까 싶었습니다. 갈비뼈 사이 세로 20센티 정도 절개한 대 수술이었습니다. 다시는 속썩이지 말고 잘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오래가질 않더라구요, 삼일이면 잊어버리게 되더라구요. 그래도 잘나던 못나던 남편이 있는게 큰 힘이 되니 최선을 다했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절에 다니는 사람이 병원에 입원 했는데 병문안 오는 사람은 몇 안되는데 교회 다니는 사람이 입원하니까 병실이 쉬지 않고 이어지고 찬송불러주고 기도해주고 그게 너무 부러워서 교회를 다니게 됬다고...맞는 말입니다. 그때 가족처럼 걱정해주고 기도해주셨던 분들게 너무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남편이 저에게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마취에서 깨어나기전에 하나님을 본것같다고. 아마도 존귀하고 귀하신 하나님을 본게 아니라 천사를 본 것 같습니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휠체어를 타고 앉아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밀었다고 했습니다. 맞은편도 칠흑같은 어둠이여서 무서웠는데 순간 환한 빛으로 집사님들이 맞이해 주셨다구요, 저를 이 자리에 세우기 위해 오래 전부터 많은 계획을 세우신 것 같습니다.
1월 28일 퇴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깜빡 잊어버리고 잘먹고 잘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3월 24일 또 한번의 시련. 생각하기도 싫은 날.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주 저를 작정하고 연단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길래 동네 병원에서 주사 한 대를 맞자고 병원에 갔습니다. 한시간 가량 주사를 맞고 같이 병원문을 나섰습니다.
크로앙스 정문을 지날 때 쯤 갑자기 남편이 쓰러졌습니다. 맥박은 거의 뛰지 않았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여자 한분이 삼성 병원 간호사라며 심폐 소생술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바로 다녀온 병원 원장님을 불렀고 원장님이 내려오셔 남편을 옮기는 과정에서 또 한번의 심정지가 왔습니다. 원장님께서 다시 심폐소생술을 했고 다시 맥박이 뛰는 사이 구급차가 도착했습니다. 저는 세종병원에서 혈관수술을 했으니 세종병원으로 가달라고 했지만 이 상태로는 세종병원까지 무리이니 성애병원에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불과 30분 사이에 일어난 일들. 지금 생각해보면 삼성병원 간호사, 동네 병원 원장님. 이 또한 하나님께서 준비해두시고 저에게 각인을 시키시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죽이고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권한인 것을, 나의 불순종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직도 나를 사랑하사 이렇게 까지 하시는데 내가 순종하는 수밖에는 없구나."
그때 다시 한번 순종을 약속했습니다. 지금 제 남편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속에서 하루하루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래서 무조건 순종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부터 전도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전도가 하고싶었습니다. 그야말로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무턱대고 전도가 하고 싶어 거리로 나갔습니다.
원래 성격이 사람을 잘 사귀는 성격인데다 사람을 참 좋아합니다. 하나님께서 고이고이 숨겨놓으셨던 계획을 호주머니에서 하나씩 하나씩 꺼내주시는데 기가막힙니다.
저의 성격과 성품에 맞게 전도자가 되라고 준비해주신 것 같았습니다. 모든 주관자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처음 새마을 시장 후문에 전도처를 마련하고 매일 두시간씩 3개월을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하나님과 오병이어교회를 전하고자 나갔습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났는데 열매는커녕 새싹 조차 나지 않더군요. 잠깐 낙심했습니다. 이렇게 쉬지 않고 전도하는데 어찌 하나님은 천사에게서 내 이야기를 못들으신걸까
전도를 그만해야하나! 아님 전도처가 여기가 아닌가!!
많은 고민에 걱정하고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경륜장으로 발길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그곳에는 무료 급식소가 있습니다. 무료 급식소 앞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시는 분들에게 커피를 무료로 드리면서 전도할 생각이었습니다. “커피 파는 겁니까?” “한잔에 얼마예요?”라는 물음에 저는 커피를 팔러온게 아니고 하나님을 전하고자 오병이어교회를 소개하고자 나왔다고 했습니다. 몇일동안 20잔의 커피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매일 그 시간에 하루도 빠짐없이 나가 전도하였습니다. “어르신 식사는 맛있게 하셨어요?” “오늘 반찬은 뭐였어요?” 시간이 지나자 100미터의 거리가 70미터가 되고 70미터의 거리가 50미터가 되더니 어느순간 가족같은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앉아서 속상한 이야기도 하시고 혼자 살고있는데 너무 외롭다고 하시는 어르신들도 계시고, 이제는 제가 오는 시간이 되면 기다려진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뒤바구니에는 커피를 싣고 노란쪼기를 입고 항상 그 시간 그 자리에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아는척도 안하시던 어르신들이 제가 노란조끼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가면 어서오라며 반갑게 맞이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커피를 많이 얻어 먹었으니 미안해서라도 교회한번 가야겠다며.동기 부여가 됬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작년에 20명을 전도했습니다. 다른 전도자분들에 비하면 부끄럽고 자랑할게 못 되지만 아무튼 복음의 문이 열어 졌습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전도를 하실 때 “병든자.가난한자.귀신들린자,눈먼자를 전도 하셨다고 배웠습니다
전도라는게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심는다고 무조건 열매가 열리는게 아닌 것을 배웠습니다.
그 밭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애정으로 다독거려주면 한 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되는데 짧은 시간이 될 수도 있고 긴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전도한 분들은 연세가 들었거나 사업에 실패한 남자분들 이었습니다.
이분들 중에서는 몸이 불편해서 전동차를 타고 오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20명중에 한달 나오시다 말고, 석달다니시다 못 오시고 멀다고 않오시는데 지금 우리 교회에
정착 하신분 네분만 사례를 하겠습니다.
첫 번째 사례는 오십대 남성입니다
결혼을 하여 멋진 아들 둘을 낳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다가 도박으로 인하여 가정이 파산까지 가게되었다고 합니다.아내와 자식들이 아버지를 다 버리고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도박을 못 끈었다고 합니다.그래서 하나님이 사고로 다리를 쳐서 못 걷게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다 낳아서 걷게되고 기초수급자로 생활 보조를 받는다고 합니다
경륜장에서 3개월 기간을 점심식사후 매일같이 만나 커피를 마시며 복음을 전하자 교회에 나가보겠다고 했습니다 몸이 불편하신데도 주일을 한번도 어기지 않으시고 새신자 양육까지 수료하셨습니다. 도박을 하지 못하도록 붙들어 달라고 기도수첩으로 날마다 기도하니 지금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도는 정말 대단하고 무섭습니다
지금은 전도사님과 함께 삶시리즈 양육을 받고 있습니다.
두 번째 전도사례는
젊은 남성분인데 교회에 나오기 전에 무직이었습니다. 등록하시고 2주 교회에 나오셨는데 취직이 되었다며 좋은 일이 생겨서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십일조 헌금은 어떻게 하는거냐고 물으시며 십일조 헌금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본인의 어려움도 해결되고 많은 변화가 생겼다며 너무 좋아하시더군요. 이런 마음을 갖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한분은 대학병원에 입원중이신 분입니다. 우연히 전도를 하면서 오병이어교회를 소개하게 되었고 담임목사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목사님 설교를 들었는데 너무 은혜롭고 언제든지 듣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병원내에 교회가 있어서 그곳으로 가도되지만 우리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싶다고 지금도 주일을 빠지지 않으시고 먼거리에서 오고계십니다.
또 한분은 필리핀 여자분과 결혼을 하셨는데 사연은 잘 모르겠지만 7곱살된 딸 아이와 집을 처분하고 나가 버렸다고 합니다. 갈곳이 마땅치 않아 천막 생활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이 교회를 다니며 변화를 받으니 십시 일반으로 도와 고시원에 들어가 살며 믿음 생활을 잘 하고 계시며 일 자리도 알아보고 계십니다.
이 분들이 다 어렵고 가난하여 남성목장에게 관리하라고 떠 넘기가 죄송했습니다
몇 번의 목장예배를 같이 드리고 예배 드린다음 교제의 시간도 갖고 식사도 하며 믿음이 성장 할때까지 목장운영을 하고 싶었지만 무리였습니다.
왜 남성목장이 있고 여성 목장이 있는지 담임목사님의 방침을 이제야 알게되었습니다.
그전에 남성목장으로 보내자던 전도사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저의 욕심이 컸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전도사님께 남성목장으로 목장원들을 보내주십사 하였습니다. 이제 이분들은 주일예배도 빠지지 않으시고 양육도 받으시고 남성목장에서 목장예배도 드리고 있습니다.
참 좋으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에게 많은 열매를 주시어 제 생전에 있을수도 없는 전도 1등을 해보게 하셨습니다. 저는 전도가 너무 즐겁습니다. 아프던 다리가 전도나갈 시간만 되면 안아픕니다. 다리가 아파야 아프다는 핑계로 전도를 하루 쉴 수 있는데 전도하는 시간에는 아픈 다리도 씻은 듯 낫습니다.
전도가 끝나고 돌아오면 다시 아파지는 다리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저는 전도를 매일 하고 싶습니다. 전도를 하다 다리가 아파서 죽는다 해도 그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은혜를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난 달까지 7년동안 운영했던 사업장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또한 정리하기 전에 21일 새벽 작정기도를 했습니다.
이제는 세상 일 하지 않고 전도에만 전염 할테니 권리금을 넉넉히 주시라고 말입니다.
분명히 들어주실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새벽기도.. 승리했을까요?! 네! 승리했습니다.
저는 “새벽기도, 수요예배, 철야예배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며 세상 돈보다 하나님 일을 더 하고싶습니다” 라며 기도를 했습니다. 작정기도를 승리하고 나니 몇일있다 계약자가 나타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을 해주셨습니다. 차고 넘치게 주시면 다시 세상으로 튕겨져나갈 연약한 나를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기에 딱 받을 만큼만 계획한 날짜에 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감사하며 하루하루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고 있구나 느끼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 정도에서 돌아올 수 있는 탕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비전을 말씀드린다면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십자가 정신을 실천하고 싶습니다.
비록 저는 가진 것이 없지만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나눌 수 있는 풍요로운 마음과 아픈 자에게 같이 아파하고 기뻐하는 자에게 함께 기뻐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느낀 것은 간절히 기도하면 들어주시고 하나님과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제 목장은 미약하나 쉼 없는 전도와 기도로 번식하고 성장하며 성령이 역사하는 목장으로 만들고 한 명의 목자가 파송될 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저는 오병이어교회가 너무 좋습니다. 많은 전도자들의 헌신과 기도로 노력한 바 우리 교회를 모르는 사람이 없더군요.
어느날 택시를 탄적이 있었습니다. “오병이어교회요” 라고 말하면 기사님이 “아 오병이어교회 기도많이 하시는 목사님”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이런 교회를 다닐 수 있게 하신 하나님, 간증하게 하여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또한 풍성한 영에 말씀의 양식을 먹여 주시는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여 끝까지 경청하여 주신 성도님께 감사드리며 더 열심히 힘써 나갈 것을 약속합니다. 감사합니다.
글 / 박영미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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