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전도간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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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교구 헌신예배 전도 간증 *소하 3교구 조성순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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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오이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645회 작성일 14-09-0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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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예배 전도 간증 

 

                              *소하 3교구 조성순 권사*

 

 

할렐루야! 저는 소하3교구 조성순 목장의 조성순 목자입니다. 간증을 한다는 건 쉬운 것 같기도 하지만 참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이 듭니다. 간증을 거절도 했지만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먼저 저의 직분에 대한 간증을 짧게 한 후 전도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2009년 6월에 권사직분을 받았습니다. 그해 11월에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어머님이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어머님은 입만 여시면 오직 예수! 눈을 감아도 예수! 눈을 떠도 예수! 평생을 주님일 하시다 천국에 가셨습니다. 

 

저희 집에 오시면 짐 내려놓고 퍼스트로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 예배드리자” 하시고, 가실 땐 아들, 며느리, 손자들 

 

한 사람 한 사람 손 붙잡고 축복 기도를 꼭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님은 항상 “예비 우리 이장로 우리 조권사”라고 부르시며 소원처럼 늘 말씀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권사라는 직분을 무겁고 부담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평신도로 교회 다닐 때, 교회 오면 성도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스몰 톡은 장로, 권사 직분 받은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항상 저만 보시면 ‘조권사’ 언제 되냐고

 

늘 물으셨습니다. 이렇게 어머님은 저에게 직분에 대한 부담감을 주셨습니다. 

 

늘 이렇게 믿음과 사랑의 마음으로 자녀를 대하시는 어머님께 한 번은 목사님 가르침대로 남편 몰래 용돈 백만 원을 

 

드렸더니, 동네방네 다니시며 며느리자랑 하시고, 딸들에게도 자랑을 침이 마르도록 하셨다고 합니다. 

 

어머님께서 천국 가기 직전 9월 생신 때, 자녀들이 자리를 비우고 아무도 없는데서 저를 꼭 않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며느리와 딸도 되지만 믿음의 딸로 여긴다,” “사랑 한다” 하셨습니다. 그러한 어머님의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지금도 그 사랑이 너무도 고맙고 감사하고 그립습니다. 어머님의 임종이 가까우셨을 때, 

 

마지막 운명인사로 “어머니 잘 가세요. 천국에서 만나요” 그랬더니 어머님이 “그래 잘 있어라” 마지막 말을 

 

하셨습니다. 

 

그 음성이 지금도 잊을 수 없고 생생합니다. 어머님의 그 사랑이 그리워서 힘들었지만 내겐 기도가 있어서 힘이 되고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천국 가신지 3개월 후에 신흥교회 공동묘지에 계신 어머니 산소를 찾았는데 평소 같으면 공동묘지가 무서워 얼씬도 

 

못했지만 어머니는 이러한 며느리를 배려하듯 그날 그 묘지는 아침 햇살처럼 포근하고 따뜻했습니다. 아~어머니는

 

천국에서도 자식들과 후손을 위해 늘 기도 하시는구나. 천국 믿음에 대한 확신을 또 한 번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이 자리에 목자권사로 서 있는 것이, 그토록 권사 직분을 받기 원하셨던 어머님께 제일 큰 효도를 

 

하고 있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권사 직분 받은 후에 저에게 많은 은혜와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간구는 내 삶의 수많은 

 

열매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기도 가운데 회개의 눈물도 있었지만 감사의 눈물이 저에겐 더 많고,

 

더 컷 습니다. 어느 날 기도를 드리던 중 문 듯 하나님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아버지 나 같은 죄인한테 이토록 

 

복을 부어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데 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때 내 심령에서 응답이 왔습니다. “첫째는 네가 

 

날 한 번도 배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날 위해 젊은 날에 시골 교회에서 충성을 다했기 때문이다. 셋째는 어떠

 

한 어려움에도 원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말씀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맞았습니다. 내 청년 시절에 오직 

 

교회 안에서 충성한 걸 하나님은 기억 하셨습니다. 또한 서울 대림동에서 보증금 2백에 월25만원 조그마한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일용한 양식을 염려하고 살던 그 시절에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 하지 않았다는 걸 하나님은 

 

정확히 알고 말씀 하셨습니다. 저는 그 세월을 기억도 못 하고 잊고 살았는데 우리 주님은 기억하시고 그리 말씀 

 

하셨습니다. 얼마나 하나님 사랑이 크던지 저의 가슴으로 표현 다 못할 만큼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그저 소나기의 

 

눈물을 흘릴 뿐이었습니다. 내 삶을 뒤돌아보면 오직 하나님께 감사 감사의 고백뿐입니다. 

 

제가 재정부실에서 헌신 한지 몇 년 동안 재정부가 참 외롭고 고립된 부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자모임도 참석 못하니 당연이 교구 식구들과 대화도 없고 얼굴도 볼 수가 없어 고립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참으로  외로운 부서가 재정부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지난번 저희 교구 헌신예배를 통하여 고인 물과 

 

같았던 내 신앙에 터닝 포인트가 주어졌습니다. 시간을 쪼개 교구 임원모임에 참여 하게 되면서 고인 물과 같았던 

 

저에게 전도의 힘과 비전이 생겼습니다. 소하3교구 헌신예배는 ‘전도로 헌신하자’라는 마음으로 임원들은 전도 5명, 

 

교구는 50명을 전도 목표로 릴레이기도와 작정 기도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임원들이 먼저 전도 헌금과 찬조를

 

모으고 목자들과 교구식구들도 모두가 한 뜻을 품고 전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인 5명과 어린아이 5명을 등록 하게 되었습니다. 고인 물과 같았던 저에게 전도의 열매는 큰 비전을 

 

심겨주었습니다. 마음이 행복했습니다.  

 

 

저의 첫 번째 전도 사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부천에 살고 있는 박수경 성도는 저의 기존 고객 이였습니다. 이분을 등록시키기 위해 기도하면서 전도를 

 

시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남편이 전도의 큰 방해거리가 되었습니다. 등록 하는 과정에서 남편은 교회 가지 말고 

 

차라리 절에나 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성도님은 저의 권유로 남편 몰래 세 딸과 오병이어교회를 오게 되었습니다. 

 

집이 부천이라 세 딸을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많이 힘들어해서 제가 매주 차량 운행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주일은 몰라도 수요, 금요 기도회 차량운행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 일들을 통해 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기가 

 

정말로 힘들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도님은 교회만 오면 하나님 말씀과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받고 삶에 힐링이 된다며 행복해 합니다. 

 

 

두 번째 사례입니다. 

 

배진철 성도님은 중2 자녀를 통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부인은 광명 큰 시장 안에서 치맥 장사를 

 

하십니다. 그런데 중2 막내아들이 공부는 안하고 사고만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교회를 다니면 혹 변화가 오지 

 

않을까 하는 맘으로 아들과 함께 교회를 다니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귀는 주일날만 되면 어떻게 하던 아들을 

 

교회 가지 못하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건들을 만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저는 지속적으로 영적

 

전투를 선포하며 마귀를 물리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마침내 주님은 영적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성도님은 아들과 

 

함께 교회에 등록 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들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세 번째 전도 사례입니다. 

 

서울에 사신 김명자 성도님은 저희 회사 동료였습니다. 나이 60세에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젊은 날에 열심히도 

 

살았지만 남편의 무관심이 성도님이 우울증에 시달리게 만든 것입니다. 이런 분이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 

 

성도님께 지속적으로 예수를 믿고 의지하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권유를 했습니다. 교통비를 드리면서 끈질기게 강권

 

하였더니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강권해서라도 내 집을 채우라 하셨기에 마땅히 사명을 

 

감당하려 했습니다. 저는 직장인이라 시간을 내어 교구 전도 모임에 참여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항상 전도해야 

 

한다는 마인드는 갖고 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증인이 되어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전도는 나의 사명이라 

 

항상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이 우리의 사명인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네 번째 사례입니다.

 

오미지 성도님은 저의 고객 이였습니다. 남편이 도박과 여자를 좋아해서 가족은 관심도 없고 전혀 돌보지도 않아 

 

늘 가난했습니다. 성도님도 남편이 힘들게 하니까 날마다 술로 나날을 보냈습니다. 자녀들 교육도 그렇고 먹고사는 

 

양식도 없어 너무도 가난할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쌀도 사다주고, 돈도 손에 쥐어 주고 했지만 깨진 독에 물 

 

붓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되어 예수를 전하기로 마음먹고 집으로 찾아가 내 간증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축복을 받게 된 이유를 전하고, 

 

‘그리 살면 안 된다, 

 

술로도 해결이 안 되고, 

 

괴로움은 내 뼈와 살을 썩게 할 뿐이다. 

 

이제 예수 믿고, 그 짐을 예수님께 맡기고, 우리함께 예수를 믿어 봅시다, 이렇게 기도해 주고 등을 다독다독

 

두드리고 안아 주었더니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랑에 굶주리고 삶에 지친 눈물이었기 때문에 저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남편은 회사가 망하고 이혼하고 떠났습니다. 계속되는 가난과 남겨진 두 자녀들, 한 여자의 인생이 참 

 

어둡다라는 생각에 슬펐습니다. 이런 분들이 진정 주님을 만나야 하고 예수를 믿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절실했습니다. 

 

지하 월세 살이 하는 모습도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결단하고 지속적으로 예수전도법으로 기도하고 물질과 사랑으로 관심을 주고 표현하다보니 우리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담임목사님 설교를 듣고 여기가 천국인 것 같다며 내가 너무나 바보처럼 살았다고 내게 용기주고 

 

힘주어서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로 술 없이는 못 살 것 같은 사람이 술도 끊고 이젠 내가 뭐라도 한번 해볼게요 

 

하더니,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식당 부엌 도우미로 조금씩 벌어서 생활하는걸 보았습니다. 아쉽지만 지금은 집 가까운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항상 어둡기만 하던 얼굴에 이젠 미소가 있고 활짝 웃기도합니다. 

 

그 성도님을 이렇게 바꾼 것은 온전히 신앙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저의 비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다시 한 번 삶의 터닝 포인트를 주신다면 저의 20년 영업 기술을 전도에 접목해서 100명의 

 

영혼들을 전도하고 싶습니다. 저는 전도란 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 사랑의 표현이라고 믿습니다. 저의 미약한 

 

삶이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데 저를 기꺼이 드리고 싶습니다. 끝까지 저의 부족한 간증을 들어주셔서 

 

감사 합니다. 조성순 목자였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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