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전도간증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오병이어교회입니다.

6교구 헌신예배 전도 간증 *소하 6교구 채경미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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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오이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05회 작성일 14-09-0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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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예배 전도 간증 

 

                              *소하 6교구 채경미 집사*

 

 

안녕하세요..  저는 소하 6교구 채경미목장의 채경미목자입니다.  

 

감히 제가 전도발표사례자로써 이자리에 서도 되는 것인지 너무나도 하나님앞에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렇게 부족한 저를  이 자리에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처음에 간증자발표를 하라했을때 너무나도 부담스러워 거부를 했으나 이것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거라면 

 

순종해야지 하는 맘으로 이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무슨말을 어떻게 해야하나? 난 전도도 제대로 한게 없는데.. 몇날며칠을 고민을 하다가 금요철야때 기도하던중 

 

주님께서 그냥 편하게 생각하라고 너가 받은은혜를 함께 나누라는  마음을 주셔서 제가 어떻게 주님을 만났는지

 

많은 사람을 전도한건 아니지만 아니 전도라기 보단 인도라는 말이 맞는것 같습니다. 

 

주님곁에 인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편하게 얘기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7녀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식구들이 많다보니  가족간의 서열속에 부모님과 언니의 말이라면 

 

무조건 "네"하고 순종하는 것과 큰 방항없이 무던하게 컷고 무엇보다 유교적인 가정에서 태어나다보니 하나님의 

 

하자도 들어보지 못하고 컷던것 같습니다. 

 

교회는 그냥 심심하면  친구들과 놀기위한 자리였습니다. 간간히 그렇게 몇번 교회를 다녀보고 성인이 되서는 

 

한번도 교회라는곳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되려 교회나가는 사람들을 비방하며 복음지를 전해주는 이들을 보면 

 

외면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내 맘대로 내 뜻대로 20대를 밤문화에 젖어 살았습니다. 

 

저는 허리가 좋치않아 20살에 디스크 수술을 했고 그렇게 허리가 안좋다보니  일이년정도 일하다 쉬고 또 그렇게

 

일이년일하다 쉬고 매번 반복되는 나날들이였습니다. 

 

직장에서는 매사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일하니 윗사람에게는 인정을 받았지만 매번 동료들과의 트러블때문에 

 

그만두기 일쑤였습니다. 그때는 이유가 제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다 잘하는데 저것들이 

 

문제지했습니다. 

 

그래서 입에는 불평과 불만을 달고 살았던것 같습니다. 그렇게 나만 잘하면 모든게 다 잘될거같던 사회생활은 

 

그렇치 않았습니다.  동료들과의 트러블때문에 그만두고  사람들과 잘지내는것 같으면 이놈의 허리가 꼭 말썽을 

 

부려 일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채 직장을 그만두는 일들이 허다했습니다. 그럴때 마다 낙심과 좌절을 맛보았습니다.

 

정말 나만 잘하면 되는게 아닌가??  난 왜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하지하며 한탄했습니다. 늙으신 부모님은 나에

 

의지상대가 못되었고  친언니들의 서열속에서 전 항상 자신감과 자존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의 의지하였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들과도 그냥 술먹고 놀뿐 

 

그 다음날이면 허무하고 후회하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나의 고민을 털어놓거나 상담할 사람이 없었습니다.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한명한명 

 

언니들은 결혼이라는것을 하면서 집에서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16세때 돌아가셨고  홀로남은 엄마는 혈관성

 

치매로 거동이 불편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의 보호자라기보다 내가 보호해야할 대상자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왜그렇게 무거운 짐으로만 느껴졌고 결혼한 언니들도 행복하다기 보단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로 

 

인하여 지쳐만 가는 모습에 나에게는 힘이 되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보였고 의지대상도 없었습니다.

 

주변상황이 어렵고 힘들고 직장생활도 순탄하지않고 그러다보니 괜시리 저에 어깨는 점점 무거워져만 갔습니다. 

 

그러던중 직장동료가 언니 우리 점보러 안갈래?? 하는 그소리를 듣는순간 호기심반 기대반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말입니다.

 

오늘은 이 점집으로 내일은 저 점집으로..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믿지않던 내가.. 오로지 나만 믿었던 내가... 나만 잘하면 뭐든 잘되거라 생각해던 내가  무엇인가에 

 

홀려 나아닌 다른 의지상대를 찾아 점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던것입니다. 

 

그러던중  아는 동생한명이 언니 저기 작두타는 점쟁이가 있는데 진짜 용하데  같이 갈래?? 하는것이였습니다. 

 

또 혹하는 맘으로 찾아갔습니다. 

그  점쟁이는 꼭 나를 아는것처럼 말을 하는것이였습니다..  너희 집에 딸많치?  근데 아무리 많아도 니가 

 

아들노릇해야돼..하는것이였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부분 고민하고 있던부분을 그 점쟁이가 하고 있는것입니다.  

 

순간 나의 마음과 귀는 그점쟁이에게  쏠리기 시작했고  점쟁이가 시키는 건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점쟁이는 또 얘기했습니다. 너희  집에 어렸을때 죽은 귀신이 너한테 붙어서 너를 괴롭힌다며 계속해서 너의 

 

앞날을  간섭할거라고 그러니  굿을 하는것을  권했습니다.  금액이 부담스러웠지만 200이라는 돈을 드려 

 

내 인생의 저주가 풀린다면 좋아진다면  해야지하며  거금 200만원을 드려 굿을 하게되었습니다. 굿을 하는당일 

 

저는  허리가 끊어지도록 불상앞에서 절을 했습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허리가 끊어져도 

 

내 이저주에서 벗어나리라 하는 맘으로 절을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미쳤었던것 같습니다.  그렇게 굿을 끝냈고 지갑속에는 뻘건 부적을 넣고 다녔습니다. 

 

그러던중 직장상사와 사이가 좋치않아  직장을 그만둘까 고민하고 있던 찰라  여섯째언니의 출산으로 인해 애기 

 

봐줄사람이 없으니 니가 와서 봐달라는 부탁을 했고 신생아실에서 근무를 했던 터라 그렇게 하겠다 했습니다.

 

어느날 이였습니다. 다섯째언니 바로 제 상위목자인 채경집사님께서 여섯째언니의 집으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언니는 나에게 교회같이가자고하며  한시간씩 거이매일 전화를 하다시피 했습니다.  

 

처음에 몇번은 언니라 거부할수없어 들었고 나중에는 슬슬 언니의 전화를 피했으며 그주  주일이되면

 

핸드폰을 꺼놓고 어디론가 잠적했습니다. 숨는 한두번 더이상 숨을때가 없어 그래 그래도 언니가 하는 말이니 

 

한번은 나가주자 하는 생각에 나가겠다 약속을  했고 언니와 함께 교회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첫출석한 

 

교회는 구리에 있는 금란교회였습니다.자그만치 2시간씩 걸려 교회를 가야했습니다. 

 

 

3층본당에 들어서는데 성가대의 찬양소리가 들려오는것이였습니다. 그 찬양소리에 내마음이 뭔지모를 뭉클함 

 

있었고 자리에 앉아서 듣는데 내 눈에서 눈물이 나는것이였습니다.  

 

아..이건뭐지? 하며 창피한맘에 눈물을 얼른 닦았습니다.그게 저의 첫 주님과의 만남이였던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의 신앙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그 주가 지나 주일이 되면 영락없이  언니는 집앞에 차를 대놓고 

 

기다렸고  이상하게도 주일 아침이면 몸은 그전보다 더 피곤하고 아픈것같았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니가 

 

기다리고 있던터라 빼도박도 못하고 꼼짝없이  끌려나갔습니다. 2시간거리의 교회를 가면서 처음에는 지치고 

 

힘들었지만  4주만 이기고 나가면 괜찮다고 한달을 그렇게 끌려가던 제가 주일을 기다리게 되었고  사모하는 

 

마음이 생겼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자라면서 지갑속에 있던 뻘건 부적은 화장실 쓰레기통속으로  

 

버려졌습니다. 

 

그렇게 1년의 주일성수와 이제는 좀더 하나님 앞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토요일도 직장이 끝나면 구리까지 

 

청년예배를 드리러 가게되었습니다. 그렇게 열심을 내던 중에 신랑을 만나게 되었고   하나님을 믿지않던 신랑을   

 

언니는 반대를 하였습니다. 저는 혼자서 내가 잘하면 신랑도 잘하지 않겠어라는 마음으로 결혼을 했고 결혼과 

 

동시에 중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낯선 신랑과 낯선 환경에서 저의 신앙은 겨우 주일만 지키는 정도... 첨엔 그래도 훈련받은게 있어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 읽고 그렇게 해나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도 시들해져만 갔습니다. 그러던중 둘째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출산과 동시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는했지만  신랑직장이 하남에 있다보니 여전히 낯선곳에서의 나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습니다. 

 

결혼생활은 점점 현실로  다가왔고 부부의 관계는 소홀해졌으며 남편에게 실망하고 미워하고 원망했습니다.

 

신랑과의 사이는 점점더 안좋아져만 갔고 그러던중 신랑만 중국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혼자서 아이둘을 

 

키우기가 어려울것같아 친정언니들이 있는 광명으로 다시 이사를 오게되었고 그러면서 여기 지금 오병이어교회로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보니 저또한 광명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과 육아까지 모든것이 나의 

 

일이다보니 감사는 커녕 불평만 나날이 늘어만갔고 그모든 화풀이의 대상자는 아이들이였습니다. 

 

예전에 다니던 산부인과를 다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퇴근시간이 넘늦다보니 아이들 찾는시간이 같이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내모습이 안쓰러웠던지 근처에 사는 절친한 언니는  "경미야 예은이 주은이는 내가 먼제 데려다가 저녁먹여 

 

놓을테니  걱정말라고 천천히 데릴러 오라고..."하는것 이였습니다. 얼마나 고맙던지..

 

언니와 저는 20살 초반에 만나 친가족들보다 더 친하게 지내왔었습니다.

 

이고마운 언니에게 전 한번도 복음을 전해본적이 없습니다. 혹시나 복음전하다 사이 멀어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에 한번도 전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고마운 언니로 제옆에 계속 있어줄줄 알았습니다. 

 

근데 언니가  어느날  "경미야..언니가 배가 아파서 더이상은 애들을 못 봐줄것같애..."하는것 이였습니다. 얼마나 

 

나에게 미안해하던지.. 언니 난 괜찮아..근데 큰병원가봐야하는 아니야?라고 했고 언니는 다음날 큰병원에 

 

정밀검사를 받아볼어 갔습니다. 병원가기전날 얘기하던중 언니는 웃으며  "암은 아무나 걸리냐...

 

"걱정말라며 얘기했습니다.

 

며칠뒤 아는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동생은 마구 울며 말했습니다.  언니가 췌장암말기라는 것이였습니다.

 

 3개월밖에 못산다고.. 정말 날벼락같은 소식이였습니다. 그때부터 초조했습니다. 저렇게 그냥 하나님 영접못하고 

 

가버리면 어쩌지..두려웠습니다. 

 

그러면서도 복음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나자신이 얼마나 한심하던지..언니는 그렇게 병세가 날로 안좋아졌고 

 

더이상은 미룰수가 없어 혼자는 두려워 김동욱목사님을 모시고가 하나님 영접기도와 안수기도를 받게 하였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기도후 나와서 "언니가 얼마 안남은듯하네..."하는것이였습니다. 그렇게 언니는 삼일뒤 

 

하나님곁으로 갔습니다. 그때 저는 전도를 미루면 안되겠다라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내주변 사람들이 언제 갈지 모르니 한시라도 빨리 전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이제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전도는 내 몫이라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전도는 내가 안해도 남들이 하니깐... 

 

나는 내신앙 지키기도 벅차니깐..하며 많은 핑계로 회피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우리 오병이어교회를 

 

다니며 변하게 되었고 십자가의 양육을 통해 자세히 알게되면서 내가 먼저 주님께 선택받은 이유와 전도는 

 

왜 해야하는지에대해 알게되었고 전도가 나의 사명임을 깨닷게 되었습니다. 예수전도법인 주고 섬기고 대접하고 

 

사랑하라는 그말씀으로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가 도울수 있는것을 찾아 도왔고 없는 형편이지만  

 

대접하고 사랑하며 전도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던중 전도한사람은 저와 함께 일했던 직장동료였습니다. 

 

저와 나이도 같고 결혼한 날짜도  갔다보니 서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기도로 준비하고 도울수 있는것을 찾아 

 

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움직여 교회에는 안나올것같던 그 친구는 저의 연예인 전도축제를 통하여 우리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도 전도를 쫌더 해보고 싶다는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직장을 

 

그만둘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교회에서  봉사하고 싶은데 제 여건이 직장을 

 

그만둘수가 없네요. 저는 연약합니다. 저는 못하니 하나님께서 내려놓게 해주세요.

 

그렇게 입버릇처럼 기도했습니다. 그러던중 작은아이가  신우신염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되었고  

 

직장에서는 저만 편히를 봐줄수가 없으니 그만두라는 것이였습니다. 

 

그땐 그게 얼마나 야속하기만하던지..  근데 지금와 생각해 보니 그게 기도의 응답이였습니다. 

 

내가 못내려놓으니 하나님께서 내려놓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처음에는 집에서 넋을 놓고 있는데 신랑이 걱정이 됐는지 교회라도 나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뭘 해야할지 몰라 있는데  채경집사님께서 전화가  왔습니다.

 

경미야.. 언니 이마트앞에서 매일 전도하는데 너도 나와서 같이하자 하는 것이였습니다.

 

으악!!  이건 아닌데 길거리에서 전도를 내가..난 못하는데..

 

하지만 상위목자이면서 나의 다섯째언니이기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갔습니다.

 

얼마나 창피하던지 .. 또 하필 내가 다니던 직장앞에서 할건 뭐람..쑥스럽고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제 자신이 왜케 초라하게만 느껴지던지.. 전도지를 주며 예수님 믿고 천국가세요..그말이 왜케 어렵던지..

 

그렇게 전도지를 나눠줄뿐 입한번을 제대로 때보지도 못한채 끝이 나버렸습니다.

 

그다음날도 그다음날도...  그렇게 일주일은 보내고  이번에는 채경집사님께서 전도특공대 목요일마다 모이니 

 

그곳에도 나오라는 것이였습니다.  낯을 많이 가리는 저는 그것만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또 순종하는 

 

마음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모인 집사님들 권사님들께서 너무나도 반갑게 맞이해 주셔서 큰어려움없이 적응을  하였습니다.

 

함께 기도회로 준비하고 다시한번 굳은 마음으로 전도해보자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믿고 천국가세요라는 

 

말을 혼자 대뇌이며 연습했습니다. 

 

제가 처음 전도특공대를 나가면서 새학기 매일전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충현초앞에서의 전도.. 많이 낯설고 부끄러웠지만 너무나도 열심히 하는 집사님들의 모습을 보고 조금은 

 

나도 힘을내어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3월 한달을 매일같이 나가 전도를 했지만 열매를 맺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전도사님께서는 절대 낙심하지말고 기도하고 준비하라고 하셨고 그러던중 아는 동생에게서의 

 

전화가 왔습니다. 

 

언니.. 울언니가 역세권 사는데 우리 교회를  와보고 싶다고  근데 쑥스러워 못가니 언니가 도와달라는 것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힘을 실어 주시려 첫열매를 맺게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두분은 그주에 

 

등록을 하셨고 4주출석을 하셨습니다.

 

저희는 4교구에서 6교구로 번식하면서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다시 출발을 하다보니 

 

전도에 내가 좀더 앞장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까지 자신감 부족으로 지인들을 많이 인도하고 있습니다. 

 

남보다는 아는 지인이 조금은 편할거 같아 그렇게 관계맺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중 그 췌장암에 걸려 죽은 

 

언니의 딸이 생각이 났습니다.

 

먼저 기도하고 연락을하고 만나 함께 교회나가자고 권면했고 그 아이는 그주에 등록과함께  주일출석을 하였고 

 

현재는 집근처 가까운 곳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희 6교구 전도부장님께서 목요일마다 반찬을 한가지씩 해가지고 오십니다. 그렇게 저희는 그반찬을 가지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태신자를 찾아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반찬을 가지고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저에게는 20년지기 친구 세명이 있습니다.  20년을 허물없이 가족처럼 지냈으면서도 한번도 제대로 복음을 

 

전해본적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사이가 서먹해지면 어쩌지하는 사람생각이 먼저들어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반찬을 가지고 찾아가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같이 일하시는 원장님을 태신자 

 

삼아 반찬을 나눠주며 매주 찾아가 관계맺기를 하고  있습니다. 

 

친구에게 간간히 교회가자고 얘기는 해보았으나 매번 거절을 했고 그럴때 마다  마음속으로는 원망이 되었습니다. 

 

친구가 그렇게 교회 한번가자고 하는데 인간적으로다가 한번은 나올수 있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는

 

 교회같이 가자고 하지 않겠다 다짐도 했습니다. 하지만 맘은 편치 않았습니다. 갑자기 내친구가 없어지면 어쩌지..

 

 나는 제대로 복음을 전한적도 없는데 그냥 이렇게 보낼수는 없지 하는맘에   새벽기도에 나가 그친구를 위하여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던중 친구의 생일이 다가왔고  하나님께서 선물을 사가지고 가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작은선물 하나를 사가지고 방문을 했고 친구는 너무나도 고마워했습니다.그주 토요일저녁 친구에게  

 

 카톡으로 이번주에  교회같이 안갈래?라는 문자를 보냈고 친구는 다음달 첫주부터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대로  내친구와는 끝인가하는 낙심도 되었지만 친구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아니 주님을 믿었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실거라 믿었습니다.그렇게 한주가 지났고  

 

다음달 첫주에 그친구는  저희 교회등록을 하였고 주일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렇게도 안나올것만 같았던 친구와 예배를 같이 드리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요... 또 한명의 친구는 

 

불교집안에서 태어나 교회라고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친구가 있습니다.그 친구와   꾸준한 연락과 만남으로  

 

복음을 전했고 지금은 두려워 멀리까지는 저희 교회를 못오지만 근처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하고있습니다.  

 

얼마전에는 또한명의 친구가 저희 교회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어렸을때부터 교회를 다니던터라 크게 거부감없이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어렸을때 함께 놀기좋아했던 저희가 함께 한교회에서 예배드릴수 있게 되어 

 

너무나도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저에게는 예전에 다니던 직장동료들과의 모임이 하나 있습니다. 췌장암으로 죽은 언니를 중심으로 9명이 모이던 

 

모임이였는데 지금은 언니가 없어 8명만 모이고 있습니다. 8명중 저만 빼고 모두 불신자이다보니 참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술마시기를 좋하하다보니 모임은 항상 술자리가 되었고 그러다보지 많은 유혹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그냥 모임에 나가지말까..이사람들과 멀리해야하나 했습니다. 하지만 곧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지금은 기도카드에 이름을 적어 기도하고 있습니다. 종종 반찬을 전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2명이 저희 교회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예배를 함께 드리지는 못하지만 그한번의 인도가 그냥 

 

인간적으로 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기도하여 언젠가는

 

함께 신앙생활을 할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세상모임이 아닌 신앙모임이 되길 기도합니다.  나같이 이렇게 

 

쓸데없는자를 하나님은 찾아주셨고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쓰시고자 훈련하십니다. 그 훈련에 순종 .충성. 

 

열심하여 하나님앞에 기쁨으로 칭찬받고싶습니다.  

 

이제까지 저희 간증을 들어주신분들에게 감사하며 은혜와 도전받는 자리가 되었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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