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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교회 청하람의 이야기청하람이야기 인도하시는 나의 하나님 _ 이승배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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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이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585회 작성일 17-10-13 15:54본문
인도하시는 나의 하나님
안.녕하세요. 음악하는 1청년 이승배입니다.
저는 오늘 저를 이순간까지 인도하시고, 앞으로도 저를 인도하실 저의 하나님에 대해 여러분께 작은 간증아 닌 간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저를 아기 때부터 키워주신 할머니를 따라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녀서 그런지 교회라는 공간은 마치 집이나 학원 같은, 가야할 때가 되면 가는 그런 공간일 뿐 이었습니다.
저희 집은 꽤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기에 이사할 때 마다 교회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내성적인 성격은 더 심해지고, 교회에 나가도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정말 교회에 출석만 하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과정을 막 마치던 때, 망원동에서 개봉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또 교회를 옮겨야 해서 같은 학원친구들과 막연한 고민을 이야기하던 중 한 친구가 자기네 교회에 나와보지 않겠냐고 하였고, 저는 좋다고 했습니다. 제가 오병이어 교회에 오기 전에 다니던 교회인데 집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이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처음 나가자마자 너무 멀어서 ‘아 너무 멀어서 안되겠다 그냥 집 근처 교회 다닌다고 말해야겠다’ 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처음 본 저를 너무 반갑게 맞아주고 저 또한 그곳의 따듯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약 8년간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때 당시 이제 막 기타독학을 시작했는데, 교회에서 마침 찬양팀에 기타자리만 비어있었습니다. 저는 바로 찬양팀에 합류를 하였고, 기타반주자로써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찬양팀을 시작하고 음악에 더 빠져들 때 즈음 저는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생겼습니다. 고3때까지 독학으로 하다가 가족의 도움으로 실용음악학원 이라는 곳을 가게 되었고 음악 입시생이 되었습니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항상 교회기타로만 연습을 하다가 저만의 기타가 없는 걸 보신 어머니는 큰 돈을 들여 기타와 여러 장비들을 구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 후로 금요 철야 때와 주일 찬양팀 반주 때 많이 무겁지만 저만의 장비를 들고 찬양 하는 것이 저에겐 즐거움과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고3 첫 입시 때 저는 탈락의 쓴맛을 보게 되었습니다. 입시원서비용으로 큰돈이 나갔고, 게다가 집안에 힘든 일들도 다 겹치게 되었습니다. 흔히 ‘돌이켜 보니 그때가 바닥을 찍었던 때였어’ 라고 하는 시기였습니다.
재수를 준비하면서 정말 많은 시련들이 있었습니다. 그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결국 입원을 하게 되셨고, 어머니는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두시면서 집안에 많은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집안이 힘들어지면서 저는 집에만 있으면서 연습 하는 것보단 음악활동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우리들에게 많이 익숙한 전문찬양사역팀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저는 기타반주자를 구한다는 어느 한 찬양팀의 모집글을 보고 지원을 하였고 오디션을 본 후에 합류를 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한번씩 편도 2시간이 걸리는 곳에 가서 합주를 했지만 저는 즐거웠습니다.
다른 알바 보다 돈이 안 들어와도 찬양반주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저는 기뻤습니다. 여러 차례 연습 후에 우리의 사역지가 생겼고, 그 사역지는 구리에 있는 어느 한 작은 교회였습니다. 편도3시간의 거리였지만 기쁨으로 감당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같은 팀의 키보드 연주하시는 형이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은 저희가 간 교회가 이단이었던 것입니다. 저희를 그곳에 인도한 팀장 형과 전도사님을 다같이 만난 후에 저희는 팀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은 ‘신앙과 찬양으로 함부로 돈 버는 것이 아니다’ 입니다. 그리고 이단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나가는 시련이었지만 저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20살 수시 때 저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학교를 딱 두 곳만 지원을 했습니다. 두 곳 중 한곳이 떨어지고 저에게는 마지막 한곳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마지막 두 번째 학교시험을 보려고 아침에 일어나 준비하 는중에 저를 키워주신 할머니에게서 정말 오랜만에 연락이 왔습니다. 아마 거의 3년? 4년만인거 같습니다. 그때 시간이 6시쯤 이었는데 할머니는 매일매일 저를 위해 기도를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오늘따라 저에게 전화를 너무 하고 싶으셨다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아침 6시에 무턱대고 전화를 했는데 그 전화를 받는 청년이 얼마나 될까요.. 물론 평소 같았으면 저도 못 받았겠지만 시험 보러 갈 준비 중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저는 할머니에게 오늘 시험 보러 가는데 기도 부탁한다고 말씀 드리고 할머니의 기도와 함께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아침 9시. 시험 타임때 순서도 4번이어서 굉장히 빨리 끝내고 집으로 가서 결과만을 기다렸습니다. 결과 발표일 날 저는 합격의 통보를 받았고 저와 가족은 너무 기뻤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3학년이 되던 해에 제가 다니던 교회에 회의감을 많이 느끼고 사람들로부터 시험을 받으면서 교회를 안 나가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거진 1년의 기간 동안이었던 것 같습니다. 말도 없이 안 나갔는데 그 누구도 연락이 오질 않았고, 저는 제가 8년동안 그곳에서 헌신한 것들, 봉사… 이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근 1년동안 방황 하던 중 아마 이번 년도 1월 즈음이었던거 같습니다. 학교 과잠바를 입고 집 앞 한내천을 산책하던 중이었습니다. 저의 과잠바 왼쪽 가슴에는 학교마크가 새겨져 있는데 그것을 본 오병이어 교회의 윤요셉 목사님께서(같은 학교 출신이라서 마크를 알아보셨습니다.) 저를 알아보시고 저를 전도셨습니다. 당시 저는 집근처 교회 어디를 출석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던 때입니다. 오병이어교회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길로 저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병이어 교회에 다니게 됨으로 제가 정말 바라던 동네친구들도 생기고, 또한 저의 신앙을 돌아보며 저와 하나님에 관계에 대해 알게 되었고, 찬양과 기도를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저를 인도해주셨습니다. 지금까지의 제가 겪은 고난과 시련은 하나님께서 저를 사용하시기 위해 단련 시키셨음을 믿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인도하셨고, 앞으로도 저를 인도하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글 / 이승배